고집스런 아이, 다정한 아빠를 만나,
고객 중심의 좋은 치료에 대한 신념을 세우다.

걷지도 못하는 갓난쟁이 시절, 아침에 울면 저녁까지 그치지 않던 아이의 곁에는
아빠는 새벽 내내 아이를 달래고 출근하는 다정한 아빠가 있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기 맘대로 되어야 성미가 풀리던 아이에게는,
다정하고 꼼꼼한 아빠가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자기 생각이 맞다고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께 질문을 하던 아이의 곁에는
아이의 궁금증을 끝까지 풀어주던 꼼꼼한 아빠가 있었습니다.

아빠의 사랑을 담은 아이는,
다정하게 상담하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한의사가 되었습니다.

반드시 좋아지게 하겠다는 고집, 끊임없는 연구와 치료에 대한 노력이 되었습니다.

항상 웃으며 환자를 대하는 원장님,
진료실이 마법의 방으로 불리다.

원인과 치료법을 알아도, 환자가 따라주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밝고 다정한 상담은 물론, 충분한 시간을 잡고 상담해 드렸습니다.

몇 번이고 설명해드리는 꼼꼼함, 밤 10시까지 카톡상담,
상담마다 개별적으로 적어주는 손때묻은 치료계획 티칭지, 개인별 전담스태프 배정.

벌써 다 나은 것 같다며 웃으며 진료실을 나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찡그리고 온 사람들이 웃으며 나오는 진료실, 사람들은 마법의 방이라고 불렀습니다.

끊임없는 연구, 세계적인 경험과 만나,
평생진료의 자신감이 되다.

확신이 없으면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낮에는 진료를 하고, 밤에는 학회활동을 했습니다.

혈자리 하나에 1000번을 맞아보고 같은 반응을 확인했고, 1만개의 처방을 하며
동일한 약을 먹어보고 연구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비롯한 세계국가대표 선수 진료, 하버드, 미시간주립대학,
영국 학회와의 교류속에서, 한의학의 우수성을 느꼈습니다.

환자가 아닌 사람 개인을 보는 의학, 의사가 직접 아픈 부위를 보고 속상한 마음을 듣는 의학,
한약재 하나 치료재료 하나 직접 꼼꼼하게 관리하는 의학은 한의학 뿐이었습니다.

개별 맞춤 평생 케어가 가능하고, 고객과 함께 늙어갈 수 있는 미래가 보였습니다.

좋은 진료로 소개와 단골이 많아지다.
한약 1만건 처방,
가족건강의 핵심은 엄마라는 것을 깨닫다.

처음 임상을 할 때, 3개월간 환자가 한명도 없는 날이 많았습니다.
한번 오신 분들은 계속 저를 찾으셨고, 가족들을 소개해주시며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가족단위의 환자가 한의원을 꽉 채우고, 한약 1만건을 처방한 뒤에 알았습니다.
가족을 신경쓰고 챙기는, 건강 가장의 역할은 엄마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요.

엄마가 결정권을 가진 가족일수록 건강하고 밝았습니다.

어린시절 엄마의 잔소리가 왜 사랑인지,
딸이 있는 할머니들이 더 건강하고 재미있게 사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지지하고 서포트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료에 자부심을 가진 꼼꼼하고
다정한 한의사만 할 수 있는 한의원을 꿈꾸다.

연구, 상담, 치료기술, 치료스케줄관리, 사회공헌.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다소 힘이 들더라도 원장이 직접 관리해야 합니다.

사회와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이타적인 고집을 가진 의료진이 모였습니다.
현백은 강연과 사회나눔활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나갑니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람을 고치고,
큰 의사는 사회를 고친다” - 닥터 노먼 베쑨